“한국인은 근면 성실하다”. 이 말은 칭찬일까 비하일까. 미국 공화당 의원이 한국계 판사 지명자에게 건넨 축하 발언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척 그래슬리 미국 상원의원이 루시 고(53·고혜란) 연방고등법원 판사 지명자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발언은 고 내정자의 상원 인준 청문회장에서 나왔다. 이날 고 내정자는 자신의 성장 과정을 소개하며 어머니가 이북 출신이고, 가족들이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와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이에 그래슬리 의원은 “당신의 성장 배경은 내 45세 며느리가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한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인 며느리의 말을 인용해 “한국인들은 근면 성실하다. (이런 자세는) 무(無)에서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게 한다”면서 “당신과 당신의 민족에게 축하를 건넨다”고 말했다. 또 고 지명자의 어머니를 “영웅” 이라고도 했다. 이에 고 내정자는 “감사하다”고 답했다.
현장에서 이 발언은 고 내정자가 첫 한국계 여성 판사로 지명된 것을 축하하는 메시지로 들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특정 인종의 성격을 획일화하는 차별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소속 주디 추 하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칭찬을 목적으로 할지라도, 특정 민족을 하나의 성격으로만 판단하는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모든 구성원을 똑같은 기준으로 대하는 것은 일부 다른 행동을 하는 구성원에게 (다름에 대한) 책임을 지우고 학대하는 일”이라며 “폭력을 조장한 의도가 아니라도 인종 차별이긴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한 민족을 똑같은 성격으로 획일화한다는 얘기다.
‘정의의 아시아계 미국인’ 대표인 존 C. 양도 “그래슬리의 의도는 알겠으나, 이는 온화한 평가로 위장한 특정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일 뿐”이라며 “열심히 일하는 태도는 한국계 미국인뿐만 아니라 그 어떤 국가 출신의 미국인이라도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그래슬리 의원 대변인은 “모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칭찬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래슬리 의원은 한국계 미국인인 며느리에서 영감을 받고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SNS)에서는 그가 고 지명자를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계 미국인’으로 규정하고 평가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WP는 이처럼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직업윤리에서 근면 성실하다는 평가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모범소수자’라는 개념으로 불린다고 전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흑인과 라틴아메리카계 이주민보다 높은 야망과 헌신으로 더 전문적인 성공을 누리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모범소수자’ 개념이 비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유색인종 간에 분열을 일으키는 데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뉴욕 시립대 브루클린 컬리지 사회학 교수인 영이 다이애나 팬은 WP 기고문에서 “모범소수자 개념은 미국 내 소수집단을 '좋은 소수자'와 '나쁜 소수자'로 분리해 인종을 계층화하고, 두 집단의 연대를 분열시킨다”며 “결국 이들을 백인 문화와 분리하는 인종차별의 또 다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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